제1장 건설업의 건전한 발전을 위한 032 국내 최초의 건설전문 금융기관 033 03. ‘최초의 건설전문 금융기관’의 첫걸음 경제개발계획과 건설업의 도약 1960년 4·19혁명 직후 들어선 민주당 정부는 우리나라 최초로 국토건설 사업계획을 수립하고, 국무원에 국토건설본부를 설치하는 등 의욕적으로 국토건설사업에 착수했지만 그 실적은 미미했다. 이어 1961년 5·16으로 등장한 군사 정부는 즉각 포고령을 내려 당시 진행 중이던 국토건설사업 을 전면 중지하고, 부흥부를 폐지하는 대신 국토건설청을 신설하여 국토 건설사업 전면을 관장하도록 했다. 또 건설업법 제2차 개정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혼란한 상태에 있던 도급 질서를 정비하기 위해 1962년 2월 7일 건 설업법 제3차 개정을 통해 면허기준을 대폭 강화했다. 이 조치를 통해 전 국 건설업체 수를 542개로 제한했으며, 이로써 우리나라 건설업 기반 구 축과 체질 강화가 이루어졌다. 이어 1963년 5월 31일 제4차 건설업법 개 정에서는 그동안 수시로 발급하던 면허를 연 2회 발급으로 제한하고 도 급한도액 산정 방법도 공사 실적 위주로 변경하였다. 1962년부터 시작된 경제개발5개년계획은 우리나라 경제사에 일대 전환을 이루는 일이면서 동시에 건설업 및 건설업체 도약의 시발점이라고 할 수 있 다. 정부는 국토종합개발계획의 일환으로 대대적인 국토건설사업을 추진하 기로 하고, 그동안 분산되어 있던 건설행정 기능을 통합하기 위해 1962 년 6월 18일 국토건설청을 해체하는 대신 건설부를 창설했다. 제1차 경제개발5개년계획 기간 동안 전 국토에는 도로·항만·철도·공항 등 기간시설 건설, 상하수도와 도시 개발, 공업단지 조성 공사 등이 계속 늘어났다. 경제개발5개년계획의 성공적인 수행은 국내 모든 산업, 그 가 운데서도 건설산업 신장의 견인차였다. 아울러 1960년대 경제개발계획 기간 동안 우리나라 건설업계는 본격적인 기계화 시공체제로 들어가며 기술 수준의 가파른 성장을 이루었다. 또 건설업이 경제개발의 선도 부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