탄금대는 본래 대문산이라 부르던 야산이다. 기암절벽을 휘감아돌아 흐르는 남한강과 울창한 소나무 숲이 어우러져서 경치가 매우 좋은 곳이다. 탄금대란 신라 진흥왕 때 우리나라 3대 악성 중 하나인 우륵이 가야금을 연주하던 곳이라 하여 붙여진 이름이다.
《삼국사기》에 보면 우륵은 원래 가야국 사람으로 나라가 어지러워지자 가야금을 가지고 신라에 귀화하였다. 진흥왕이 기뻐하여 우륵을 충주에 살게 하였고 신라 청년들을 뽑아 보내 악을 배우게 하였다. 우륵은 이들의 능력을 헤아려 각기 춤과 노래와 가야금을 가르쳤다 한다. 우륵이 이곳에 자리잡고 커다란 바위에 앉아 가야금을 타타니 그 소리에 사람들이 모여 마을을 이루었다고 한다. 이후 탄금대라 불리게 되었다.
충민공 임경업(1594∼1646)장군의 충절을 기리기 위해 세운 사당이다. 숙종 23년(1679)에 사당을 세웠고 1706년에 장군에게 충민공 시호가 내려졌다. 영조 3년(1727)에는 사당 이름을 충렬사라 했다. 임경업 장군은 선조 27년(1594) 충주에서 태어나 인조 2년(1624) 이괄의 난 때 큰 공을 세웠다. 특히 병자호란 때 백마산성과 의주성을 다시 쌓아 국방을 강화하는 등 큰공을 세웠다. 1646년 국내의 ‘심기원의 모반 사건’에 억울하게 연루되어 감옥에서 고문을 받고 피살되었다. 현재 충렬사에는 장군의 영정을 모시고 있으며 그 앞에 장군이 사용했던 유품을 전시하고 있다. 사당 앞 왼쪽에는 장군 부인의 곧은 절개를 기리기 위해 세워진 정렬비가 있다. 가까운 곳에 임경업 장군의 묘소가 있어서 함께 둘러보기에 좋다. 가볼만한 곳으로는 수주팔봉과 대림산성, 수안보온천지구 등이 있다.
우리나라의 중앙부에 위치한다고 해서 중앙탑이라고도 부른다. 국보로 지정되었으며 남한강의 아름다운 경관과 잘 어우러져 있다. 통일신라시대의 석탑으로 당시에 세워진 석탑 중 가장 규모가 크다. 전체적으로 2단의 기단 위에 7층의 탑신을 올린 모습이다. 기단에서의 기둥조각 배치, 탑신의 몸돌과 지붕돌의 짜임수법으로 보아 통일신라 후기인 8세기 후반에 세웠을 것으로 보인다. 전체적으로 규모가 커서 웅장해보이지만 지나치게 높은 듯 하여 안정감은 덜하다. 1917년 탑을 보수할 때 6층 몸돌과 기단 밑에서 사리장치와 유물이 발견되었다. 특히 6층 몸돌에서 발견된 거울이 고려시대의 것으로 밝혀져 탑 조성 이후 고려시대에 와서 2차 봉안이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가까운 곳에 충주조정체험학교. 술박물관 등이 있으며 남한강의 수려한 경치를 즐길 수 있다.
1890년(조선 고종 27) 오영근이 창건한 사철이다. 약초를 캐러 갔다가 석간수를 발견했는데, 그 물을 마시고 소원을 빌었더니 소원이 이루어졌다고 한다. 이후 석간수는 영천으로 이름이 났으며 오영근이 근처에 초가 2칸을 마련하여 절을 창건했다고 한다. 건물로는 대웅보전과 삼성각, 용신, 범종각, 요사채 등이 있다. 이 중 대웅보전은 정면 3칸, 측면 2칸의 팔작지붕 건물로 1924년 세워진 것이다. 내부에 아미타불과 석가모니불·관세음보살의 삼존불이 있고 불상 뒤로는 극락후불탱화와 지장탱화·십일면관음탱화 등이 모셔져 있다. 불상 주위에는 십육나한상이 놓여 있는데, 이 중 4구는 절 부근에서 출토된 것이다. 그밖에 팔각원당형부도 재료와 고려청자 1점이 발굴된 바 있다. 이들 유물은 1995년에 충주박물관으로 이전되어 보관중이다.
1929년에 창건된 절이다. 1994년 대규모의 화재로 법당일부와 철불좌상을 봉안한 보호각이 소실되어 다시 중건하였다.대원사의 무량수전은 근래에 지은것으로 정면5칸, 측면 4칸의 팔작지붕 목조 기와집이다. 법당안에는 아미타불좌상을 주존으로 좌우에는 관세음보살과 지장보살이 봉안되어있고, 천불상과 신중탱화및 동종이 있다. 극락전은 정면 3칸, 측면 2칸의 팔짝지붕 목조기와집으로 건물 내에는 보물 제98호인 충주철불좌상이 봉안되어 있다. 충주시내에 있는 사찰로 근처에 관아공원과 충주문화회관, 택견전수관 등 가볼만한 문화예술공간이 있다.
조선 숙종 때 중건된 곳으로 1954년에 중수한 후 단호사라 개칭하였다. 한때 송림사라 불리던 때가 있었는데 경내에 유명한 노송 한그루가 있기 때문이다. 이 소나무는 조선시대 초기에 심어진 것으로 전해진다. 전해져오는 이야기로 강원도 지방에 살던 문약국이라는 사람이 이 곳에 아들을 얻기 위해 불공을 드리러 왔다고 한다. 이곳을 지나다니는 사람들은 이곳을 약사당이라고도 한다. 불당을 고치고 양방도 옮겨놓고 불공을 드렸는데 적적함에 소나무를 한그루 심었다고 전해진다. 충주시 외곽에 자리하고 있으며 근처에 단월강수욕장과 수주팔봉, 대림산성 등 가볼만한 곳이 많이 있다.
충주시 남산 중턱에 자리하고 있는 사찰로 신라 문무왕 때 원효대사가 창건한 절이라 전해진다. 조선시대까지 두 차례에 걸쳐 중건되었으며 1988년 전통사찰로 지정되었다. 창룡사의 시설은 극락보전, 산신각, 요사 등으로 구성되어 있다. 이중 극락보전은 정면 3칸, 측면 3칸의 팔작지붕 건물로, 아미타불, 관세음보살, 대세지보살을 봉안하고 있다. 산신각은 정면 2칸, 측면 1칸의 건물로, 독성도와 산신도를 봉안하고 있다.
"금봉산 자락에 자리하고 있는 사찰로 1983년에 세워졌다. 옛 죽장사 터에 건립되었다고 전하나 조선시대의 기록에서 찾아보기 어렵다. 절터에 고려시대에 만들어진 것으로전하는 석탑이 있어서 고려시대 사찰터로 확인할 수 있다. 혜국이 창건했으며 현재 불사가 진행중이다. 창건하게 된 일화로는 혜국이 꿈에서 어느 스님이 보여준 절터를 찾아서 불사를 세웠다고 한다. 현재 신도들의 도움을 건물을 짓고 있다. 석종사는 승려만을 위한 공간이 아니라 재가자 역시 사찰에서 머물면서 수행할 수 있도록 하고 있다. 매달 넷째 주에 큰스님의 정기 법회가 있고, 전국 각지에서 많은 불자들이 찾아오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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